워싱턴주가 사형제도를 공식적으로 폐지하고 사형집행실을 영구 폐쇄한다. 1904년 이후 78명의 사형을 집행해온 120년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다.
워싱턴주 교정국은 오는 20일(현지시간) 월러월러에 위치한 주립교도소에서 제이 인슬리 주지사가 참석한 가운데 사형집행실 폐쇄 기념식을 개최한다고 16일 밝혔다. 이로써 워싱턴주는 미국에서 23번째로 사형제를 폐지하는 주가 된다.
워싱턴주의 사형제 폐지는 2014년 인슬리 주지사의 모라토리엄(유예) 선언으로 시작됐다. 당시 인슬리 주지사는 사형제도의 불공정성을 지적하며 재임 기간 동안 사형 집행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2018년 주 대법원이 사형제가 위헌이라고 판결하면서 사실상 폐지됐고, 지난해 주 의회가 관련 법령을 삭제하면서 완전히 종료됐다.
■ 논란의 중심에 선 사형제도
워싱턴주의 사형제도는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1972년 연방대법원이 전국적으로 사형제를 중단시킨 후, 워싱턴주는 1981년 새로운 사형법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 법은 사형수에게 교수형이나 주사형 중 선택권을 주는 독특한 조항을 포함하고 있었다.
전직 교도소장 딕 모건은 “당시 교수형을 유지한 유일한 주였다”며 “시대착오적이고 잔인할 수 있는 방식을 고수한 것은 당시의 반범죄 정서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사형제도의 불공정성에 대한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인슬리 주지사는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는 압도적인 불공정함이 있었다”며 “인종차별과 고비용으로 인해 일부 카운티에서만 사형을 구형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워싱턴대학교 연구진의 조사에 따르면 흑인 피고인이 사형 선고를 받을 확률은 백인의 4배에 달했다. 이는 2018년 주 대법원이 사형제를 위헌으로 판결하는 주요 근거가 됐다.
■ 피해자 가족들의 복잡한 심경
사형제 폐지 과정에서 피해자 가족들의 의견은 크게 엇갈렸다. 2014년 아들을 잃은 팔라나 영 씨는 “한 사람이 그런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며 인슬리 주지사의 모라토리엄 선언에 분노를 표했다.
반면 킹카운티 검사를 지낸 댄 새터버그는 “사형 선고는 필연적으로 수년간의 항소로 이어져 피해자 가족들에게 더 큰 고통을 줄 수 있다”며 종신형이 더 확실한 처벌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그린리버 킬러’ 사건의 영향
워싱턴주 사형제 논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린리버 킬러’ 게리 리지웨이 사건이다. 49명의 살인을 자백한 리지웨이는 검찰과의 협상 끝에 사형을 면하고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킹카운티 보안관이었던 데이브 라이허트(현 공화당 주지사 후보)는 “사형 위협이 리지웨이의 자백을 이끌어냈다”며 사형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반면 새터버그 전 검사는 “리지웨이 사건은 종신형으로도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는 예”라고 반박했다.
■ 조용한 마무리
워싱턴주의 사형제 폐지는 의외로 조용히 마무리됐다. 제이미 페더슨 주 상원의원은 “사형제 폐지를 큰 진보적 이슈로 만들지 않고, 문제가 있는 법들을 정리하는 ‘결함 및 누락’ 법안에 포함시켰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사형제 존치를 주장하는 제니 그레이엄 하원의원(공화당)은 “너무나 교묘한 방식”이라고 비판했지만, 결국 법안은 쉽게 통과됐다.
20일 폐쇄식 이후 사형집행실에는 이러한 역사를 간략히 설명하는 명판이 걸릴 예정이다. 120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워싱턴주 사형제도는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됐다.
출처 : 시애틀코리안데일리(http://www.seattlek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