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한미 변호사협회(KABA) 34주년 기념 만찬이 지난 20일 시애틀 롯데호텔에서 개최된 가운데, 미국 최초의 한국계 여성 연방판사인 루시 고 제9순회 연방항소법원 판사가 기조연설을 통해 히로시마 원폭 한인 희생자들의 잊혀진 역사를 조명했다.
킹5뉴스의 인종문제 전문기자 샤론 유가 사회를 맡은 이번 행사에서 고 판사는 “히로시마 원폭 사망자 20만 명 중 10%인 2만 명이 한국인이었음에도, 이 사실이 수십 년간 공식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고 판사에 따르면, 희생된 한국인들은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일본 국민 신분으로 히로시마에 있었던 이들이다. 일부는 자발적 이주였으나, 상당수는 일본 제국군이나 군수시설에 강제 동원된 노동자들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이들은 일본 국적을 상실했고, 대부분 의료 지원도 받지 못한 채 한국의 농촌이나 빈곤 지역으로 돌아가야 했다.
특히 이들의 존재는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오랫동안 공식 역사에서 배제됐다. 한국 당국은 원폭이 일제 해방의 수단이었다는 입장이었고, 일본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보이길 원했으며, 미국은 원폭의 장기적 피해 영향이 알려지는 것을 꺼렸다고 고 판사는 설명했다.
1970년에 이르러서야 한인 희생자를 위한 기념비가 건립됐으나, 이마저도 법적 제약으로 평화기념공원 밖 강 건너편에 설치됐다. “죽은 자들의 영혼이 거북이 등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문구가 새겨진 이 기념비는, 공원 개장 45년이 지난 1999년에야 공원 내로 이전이 허용됐다.
고 판사는 자신의 가족사를 언급하며 한인 이민자들의 역사적 고난과 극복을 강조했다. “우리 어머니는 10살 때 북한을 탈출하기 위해 2주간 밤길을 걸어야 했고, 많은 한인들이 언어와 이름을 빼앗긴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그리고 이민 초기의 차별을 견뎌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우리가 역사 속에서 잊혀진 이들을 기억하고, 현재의 소수자와 취약계층을 돌보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특히 일본계 미국인 강제수용, 아메리카 원주민 차별 등 다른 소수자들의 아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2021년 12월 바이든 대통령이 임명한 고 판사는 하버드대 학부와 법대를 졸업했으며, 연방 검사보, 법무부 차관 특별보좌관 등을 거쳐 미국 최초의 한국계 여성 연방판사이자 캘리포니아 북부지방 최초의 아시아계 판사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날 행사는 시애틀 다운타운 809 5th Avenue에 위치한 롯데호텔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출처 : 시애틀코리안데일리(http://www.seattlek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