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서부 최대 도시 중 하나인 시애틀에서 30만 달러(약 4억 원) 이하의 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면 어떨까. 집값 폭등으로 ‘내 집 마련’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된 요즘, 이는 꿈같은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시애틀의 한 비영리 단체가 이를 현실로 만들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홈스테드 커뮤니티 랜드 트러스트(Homestead Community Land Trust)’라는 이름의 이 단체는 지역사회 토지 신탁 모델을 통해 저소득층에게 저렴한 가격에 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이 모델은 부동산 시장의 변동성에 영향을 받지 않는 영구적인 저가 주택 풀을 만들어, 평균 소득 이하의 가구들에게 주택 소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지난해 12월, 시애틀의 한 부부는 이 제도를 통해 시애틀 델리지 지역에 있는 콘도를 구입했다. 은행 감정가 53만 달러의 이 콘도를 단 27만 8천 달러에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연간 총소득은 7만 9천 달러로, 시애틀 중간 가구 소득인 12만 600달러를 크게 밑돈다.
부부는 “일반 시장에서 집을 사는 것은 우리에겐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제 매년 오르는 임대료나 새 임대 계약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혜택에는 몇 가지 조건이 따른다. 우선 구매자의 소득이 지역 중간 소득의 80% 이하여야 한다. 또한 집을 팔 때는 반드시 홈스테드를 통해 같은 소득 기준을 충족하는 구매자에게 매각해야 하며, 매년 최대 1.5%의 가치 상승만 인정된다.
이런 제한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이 제도는 유일한 주택 구입의 기회다. 현재 홈스테드의 대기자만 2,000가구에 달하며, 한 채의 주택에 30가구 정도가 지원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시애틀 타임즈 에 따르면 프랭크 비디오(69)씨는 17년 전 홈스테드를 통해 프리몬트 지역의 60㎡ 콘도를 구입했다. 당시 27만 달러였던 이 집의 월 주택담보대출금과 세금은 900달러, 관리비는 450달러 수준이다. “내 욕구는 그리 크지 않아요. 이 공간은 매우 편안하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동네예요. 안정감과 안전함을 느낄 수 있죠.”라고 그는 말했다.
또한 레이첼 페이버 마차차(45)는 세 자녀를 키우는 싱글맘이다. 워싱턴대학교에서 학업 조언자로 일하며 연봉 7만 2천 달러를 받는 그녀에게 일반 주택 시장은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다. “살인 오두막”이라고 부를 정도로 낡은 집들만이 그녀의 예산 범위 안에 있었다.
그러다 2020년 홈스테드를 알게 된 그녀는 같은 해 11월, 웨스트 시애틀에 있는 4개의 침실이 있는 167㎡ 타운하우스로 이사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 기간 내에 집을 살 수 있었을 리가 없어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마차차는 이 제도의 제한 사항들이 오히려 장점이 된다고 본다. “저는 투자가 아니라 집이 필요했어요. 제 돈을 두 배로 불리지는 못할지 모르지만, 이 집은 영원히 저렴할 거예요.” 그녀는 이를 통해 은퇴 준비 같은 다른 중요한 재정적 문제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홈스테드의 캐슬린 호스펠드 사무국장은 “우리의 목표는 사람들이 임대료 부담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고, 저축을 하며, 원한다면 나중에 일반 시장의 집을 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257채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홈스테드는 2030년까지 그 수를 500채로 늘릴 계획이다. 최근 시애틀시로부터 웨스트 시애틀에 21채의 저가 주택을 개발할 계약을 따냈고, 올 여름에는 피니 리지 지역에 38가구 규모의 개발에 착수했다.
미국에서 지역사회 토지 신탁 모델은 1960년대 조지아주 올버니에서 흑인 농부들과 시민권 운동가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1990년대부터는 주거비가 높은 도시들에서 저렴한 주택 공급 방안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클라크 대학의 데보라 마틴 교수는 “도시에는 항상 저렴한 주택이 필요합니다. 영구적인 보조금은 일정량의 주택을 항상 저렴하게 유지할 수 있게 해줍니다.”라고 설명했다.
전체 주택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만, 이 모델은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과 자산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시애틀의 사례는 한국을 비롯한 집값 급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전 세계 대도시들에게 하나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출처 : 시애틀코리안데일리(http://www.seattlekdaily.com)